한국정치 [단독] 홍진기는 왜 시위대를 쏘았나?
1960년 4월 19일, 서울의 봄은 피로 물들었다. 경무대 앞은 학생들의 함성과 최루탄 연기, 그리고 곧 총알 소리로 뒤덮였다. 수만 명의 시위대가 “이승만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돌진했다. 경찰의 방패벽은 이미 무너졌고, 공기 중에는 죽음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바로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역사에 피의 기록을 새겼다. “장관님, 더 이상 못 막습니다. 시위대가 경무대를 향해 밀려오고 있어요. 발포해도 되겠습니까?” 서울시 경찰국장 유충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내무부 장관 홍진기(洪璡基)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차갑게 떨어지는 한마디. “사태가 위급하면 발포하시오.” 그 한마디가 18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무대 앞에서만 21명 사망, 172명 부상. 전국으로는 사망 186명, 부상 6천여 명. 그날 이후 한국 현대사는 영원히 갈라졌다. 홍진기는 왜 그 명령을 내렸을까? 그 물음은 65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무겁게 내려앉는다. 그 명령은 단순한 관료의 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앙일보를 낳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끌고간 ‘보도 DNA’가 되었다. 3.15 부정선거, 그리고 불타는 봄 모든 것은 1960년 3월 15일
- Steven Choi
- 2025-11-25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