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TV.Radio 권성준 기자 | 올해 미국 핼러윈 소비가 미·중 관세 부담,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우려에도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즐거운 도피(joyful escapism)’를 추구하는 심리가 지갑을 열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2일 미국 최대 소매 무역 협회 전미소매협회(NRF)가 여론조사기관 프라스퍼 인사이트 애널리틱스(Prosper Insights & Analytics)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미국 전역에서 핼러윈 총 지출액은 131억 달러(약 18조 740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지출액 116억 달러는 물론, 팬데믹 이후 ‘보복 소비’가 정점에 달했던 2023년 종전 최고 기록(122억 달러)마저 10억 달러 가까이 웃도는 수치다.
1인당 평균 지출액도 114.45달러(약 16만 5000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역시 2023년 108.24달러를 훌쩍 넘어선 기록이다.

NRF는 미국 최대 소매 무역 협회다. 이들이 집계한 연례 소비 데이터는 미국 실물 경제 바로미터로 통한다. NRF는 “가격 인상 우려에도 핼러윈은 전 세대에 걸쳐 여전히 매력적”이라며, 더 많은 소비자가 의상·호박 조각·집 꾸미기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주요 언론들은 올해 이러한 소비 열기가 미국 경제를 짓누르는 여러 불안 요소를 정면으로 뚫고 나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소비 절벽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당장 NRF 조사에서조차 핼러윈 쇼핑객 10명 중 8명(79%)은 미·중 갈등에 따른 관세로 인해 올해 제품 가격이 뛰었다고 했다. 식품 관련 매체 푸드 인스티튜트 조사에선 응답자 가운데 86%가 ‘지난해보다 사탕 가격이 비싸졌다’고 체감했다.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상적인 삶’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보상 심리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캐서린 컬런 NRF 부사장은 팟캐스트에서 “경제 관련해 즐겁지 않은 소식이 많은 시기에는 사람들이 즐거운 것에 집중하고 공동체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고 했다. 리 맥피터스 애리조나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소비자들이 일시적이나마 정상으로 돌아가고픈 희망 속에 강력한 지출로 경제 불확실성에 반격했다”고 평했다.
핼러윈이 하루 행사를 넘어 이전보다 긴 시즌 형태 행사로 자리 잡은 덕에 소비 규모가 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학교들은 10월 31일을 전후한 주말에 집중했던 ‘핼러윈 주말(Halloweekend)’ 일정을 ‘핼러윈 주간(Halloweek)’으로 확장하는 추세다. 자연히 의상과 소품 구매가 늘며 지출 규모를 키웠다. NRF에 따르면 소비자의 49%가 9월 또는 그 이전에 핼러윈 쇼핑을 시작했다. 5년 전 40%에서 9%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월마트, 타깃 같은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보다 빠른 5월과 7월부터 핼러윈 관련 상품을 온라인에 내놓으며 일찌감치 축제 분위기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유통업계에서는 ‘서머윈(Summerwee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일각에선 축제 참여 여부가 경제력과 크게 관계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집계에 따르면 핼러윈을 기념하지 않는 사람들(19%) 중 79%가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고 답했다. 특히 밀레니얼 가운데 92%는 올해 핼러윈을 즐겼다고 답했지만, 베이비부머 중에서는 65%에 그쳤다. 핼러윈이 경제 여건보다 개인적 성향에 더 좌우된다는 의미다.
구체적인 지출 항목을 보면, 미국인들은 의상에 43억 달러(약 6조 2000억 원)를 소비했다. 총 의상 지출 43억 달러 중 어른 의상에 20억 달러 , 어린이 의상에 14억 달러가 쓰였다.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어른들 사이에선 ‘마녀(560만 명)’가, 아이들 사이에선 ‘스파이더맨(230만 명)’이 가장 인기 있는 의상으로 꼽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의상도 올해 품절 대란을 기록했다고 했다. 극 중 등장하는 데몬(요괴) 캐릭터를 포함해 저승사자를 묘사한 ‘사자보이스’ 캐릭터가 특히 인기를 끈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 의상에도 8억 6000만 달러(약 1조 2000억 원)가 쓰였다. NRF 집계 결과 가장 인기 있는 반려동물 코스튬은 호박(9.8%)이었고, 핫도그(5.4%)와 꿀벌(4%)이 뒤를 이었다. 이어 집이나 마당을 꾸미는 장식용품에 42억 달러 , 사탕류에 39억 달러 , 축하 카드에 7억 달러를 지출했다.
컬런 부사장은 “가격 상승 우려에도 불구하고 핼러윈은 모든 연령대 소비자에게 계속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중요한 사람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기념을 우선시하겠다는 소비자들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